세종의 첫째 아들로 모든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문종은 세자로서 29년간 세종을 보필했으며 아버지 세종 또한 칭찬을 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조선시대 5대 문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문종은 충녕대군의 큰아들로 태어나 이름은 향(珦)이며, 자는 휘지(輝之)이다. 할아버지 태종은 맏아들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세워 왕위계승을 할 계획이었으나 세자에서 폐위되고 문종의 아버지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면서 문종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문종은 세종이 즉위한 이후 문종은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어린 시설 성품이 곧고 학문을 매우 좋아하고 형제들과의 우애도 돈독하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세종이 몸이 아픈 경우 간호에 극진한 정성을 쏟기도 하였습니다.
문종은 외모가 특출하였다고 전해지며 글씨 또한 상당한 명필로 유명하였으며 국방, 농업, 과학등에도 관심이 많아 세자로서 아버지 세종을 열심히 도와 조선 초기 태평성대를 이룬 능력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완벽한 이미지의 문종에게도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생동안 처복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 김오문의 딸 세자빈 휘빈 김씨는 첫날밤을 치른 후 문종이 찾아오지 않아 문종의 총애를 얻기 위해 온갖 미신적인 방법을 쓴 것이 나중에는 탄로가 나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궁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이후 종부소윤 붕어의 딸, 순빈 봉씨를 두 번째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는데 휘빈 김씨보다 행실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후궁 권씨가 임신을 하자 이에 대해 분개하는가 하면 문종의 총애를 얻기 위해 궁인들을 사주하고 음주, 식탐, 궁인과의 동성애 등의 행실로 결국 폐출을 당했다고 합니다.
2번의 실패로 인해 아버지 세종은 문종이 좋아하는 후궁중에서 세 번째 며느리를 뽑았는데 훗날 현덕왕후 권씨로 문종과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씨 역시 세자빈이 된 지 5년 만에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였는데 그 아이가 단종입니다.
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세명의 부인을 모두 잃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으며 세종 말기에 8년간 아픈 세종을 대신해 대리청정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습니다.
세종이 승하하자 문종은 35살의 나이로 국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세종의 삼년상이 끝나자마자 문종도 승하하여 그의 재위 기간은 2년 남짓한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도 문종은 몇몇 중요한 업적을 남기며 세종대부터 추진된 국가의 사업들을 무리 없이 이어나갔습니다.
문종은 경연을 실시하여 학문을 닦고 윤대와 야대를 통해 신료들과 자주 접견했으며 윤대에 들어오는 신료들의 자격을 확장하여 관료 개개인의 식견과 능력을 직접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문종은 군사제도와 무기제작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화차를 제작하였고 변방에 실전 배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한 화차에서 중신기전 1백 개 혹은 총통 50발을 연달아 발사할 수 있는 대단한 성능의 독창적인 무기였습니다. 또한 군사의 운용방식과 훈련방식을 새롭게 개정하여 진법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역사에서 문종은 재위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강한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흔히 연상되는 나약한 이미지와 달리 문종은 통치의 다양한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유능하고 통찰력 있는 통치자임을 입증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문종의 짧은 치세는 그의 아버지인 세종의 걸출한 유산에 가려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종은 재위 기간 동안 군사적, 문화적, 사상적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고 연구되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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